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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부 6권 제피아 등장부분

2019.10.26 02:04

AAAA 조회 수:42


제피아와 첫만남


 언덕에서는 조금 전 있던 묘지와 늪이 내려다보였다.

 "아항, 저게 말로 듣던 늪인가."

 접근하지 말라고 들었지만 멀리서 살피는 것쯤은 상관없으리라.

 의외로 큰 늪으로, 좀 전의 묘지 정도는 몽땅 들어갈 만하다. 진흙이 섞여 투명도가 낮은 상태로 보건대, 옛날에는 발이 미끄러져 빠진 사람이 그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 같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유독성 가스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군.'

 멍하니 생각했다.

 도깨비불 현상(윌 오 위습)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습지 등에서 나오는 발화성 가스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을 터다. 낭만이 없는 이야기이긴 한데 세상에 그리 흔하게 진짜배기 신비가 남아있을 턱이 없고, 거의 이런 진상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풍차도 이미 망가졌는지 바람 깨나 부는데도 움직일 낌새가 없었다.

 과거 돈키호테가 괴물이라고 믿으며 돌격했던 건조물은, 지금은 송장 같았다.

 붙여 세운 오두막의 문을 오라비가 두드렸다.

 대답은 없다.

 "잠기진 않았군. 들어가 보지."

 "이봐.'

 만류할 틈도 없이 오라비가 문을 열었다.

 이럴 때, 우리 오라비는 무턱대고 과감하다. 서슴없이 들어서서 방 내부를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이건··· ···?"

 정돈된 오두막 내부에는 놀랍도록 현대적인 기기가 갖춰져 있었다.

 아니, 이건 정말 현대기기가 맞나?

 현대과학을 싫어하기 일쑤인 마술사 틈에서, 나는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로 컴퓨터에도 손을 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본 적도 없는 기종뿐이었다. 수정을 깎아낸 것 같은 직육면체는 얼핏 최근의 투명 컴퓨터로도 보이지만 키보드와 마우스 같은 당연히 있어야 할 인터페이스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면··· ···.'

 한가지 예상이 뇌리에 번뜩였다.

 그런 기기를 다루는 일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상시 그 일파는 땅속에 처박혀 있기로 유명하다. 두더지라고 야유받을 때도 있으면서 결코 무시하지 못 할만큼은 강대한 조직.

 오라비의 시선이 올라갔다.

 축축한 어둠은 몇십 년씩 보관된 와인과 비슷했다. 누구도 그 베일 속을 엿보게 두지 않고 아주 느릿느릿 양조된 어둠. 그런 망상을 부추기는 시간 끝에.

 "――컷."

 침착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어서, 발소리.

 내 체중에도 크게 삐걱거릴 만큼 부식된 장소지만 그 상대의 발소리는 고양이처럼 작았다.

 어둠을 가르며 금발이 나타나고 긴 케이프 자락이 나풀거렸다.

 눈을 감은 외견은 20대 중반 가량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코 그 외견과 같은 나이일 리가 없다.

 "컷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어."

 그는 단정한 입술로 속삭였다.

 "명색이 현대마술과의 새 로드와 원장이 만나는 곳일진대 무대 세팅을 그르쳤군. 연출이든 각본이든 감독이든, 크게 책임을 물어야겠지. 소박한 디자인은 나쁘지 않지만 극적인 장면은 그만한 양식도 필요한 법."

 "··· ···설마."

 세포 전부가 끓어오르는 줄 알았아.

 그 상대의 정체는 너무나도 유리되어 있었다. 아무리 고명한 묘지라고 해도 이런 외딴 마을에 나타나는 건 이상 사태를 뛰어넘었다.

 원/장/ .

 그 직함은 시계탑에도 존재한다.

 단, 거의 전설상의 존재라고 해도 된다. 열두 로드를 넘는 정점. 시계탑 설립부터 한 번도 대물림하지 않았다고 회자되는 마술사는 나조차도 직접 뵌 적이 없는 상대다.

 "아아, 원래라면 현관까지 마중 나가야 했겠지만, 오늘도 햇볕이 따갑더군. 다소 까다로운 체질이라서 말이야. 일단 대책은 세웠지만 직사일광은 번거로워."

 "··· ··· ··· ···."

 솔직히 말하겠다.

 블랙모아의 묘지도 묘지기도, 이때 내 머리에서는 싹 날아가 있었다. 이 토지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이미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전락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온 오라비의 여행길에 이런 상대가 기다리고 있었을 중, 누가 알았으랴.

 '··· ···그럼, 이게··· ···.'

 마술협회라면 현재 거의 시계탑을 뜻하는 말이 되었지만, 본래는 세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물론 시계탑.

 또 하나는, 옛 신화시대의 마술을 신봉하는 방황해(彷徨海).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서양과는 다른 옛 연금술을 취지에 둔 이단――.

 "··· ···제피아 엘트남 아틀라시아."

 오라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제 3의 마술협회―― 아틀라스 원(院)의 원장이 거기 서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제피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다지 뜻밖이란 표정을 안 짓는군."

 "물론, 놀랐소. 지나치게 놀라면 표정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

 제피아의 앞에서 오라비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실제로 긴장한 건 관자놀이에 흐르는 식은땀으로 알 수있다. 지나치게 놀랐다고 한 말은 겸손도 비유도 아니며 단순한 진실일 것이다. 도리어 충격파가 좀 더 낮았더라면 졸도했을지도 모른다.

 "아틀라스 원의 원장이,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을?"

 "뭘, 별것 아닌 데이터 수집 때문에 말이야. 한동안 체류할 예정이지."

 점잔 빼는 음성이 옅은 어둠 속에 울렸다.

 이번만은 나도 오라비 못하지 않게 전율하고 있었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은 한 번만 더 건드리면 뻥 터져버릴 것만 같다. 만에 하나라도 여기서 오라비와 제피아가 임전태세에 들어가면 마술협회의 역사가 바뀔지도 모른다. 그런일은 있을 수 없다고 이성이 부르짖어도 예측 불능의 사태에 공포가 머리를 내밀고 만다.

 오라비가 시선을 살짝 내렸다.

 "아틀라스 원의 우두머리가 이런 곳에 있는데, 불편사항은 없소?"

 "하하하. 전화선 까는 것도 싫어하는 시계탑과는 달라. 이미 원장이 별 어디에 있어도 정보공유에는 지장이 없고말고. 그러하다면, 최소한 나 개인에 한해선 좋아서 두더지 생활을 할 필요도 없는 바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원장에 따라서는 방침이 완전히 바뀌겠다마는."

 연극조의 몸짓이 이 상대에겐 그럴싸했다. 이 남자 주위만 은막을 그대로 오려낸 것만 같다.

 그런 구석은 역시 20대 청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청춘이라기에는 제철을 넘겼겠지만 아직 젊음을 구가하는 연배다. ··· ···장수에 도달한 마술사는 많지만 이건 비정상이다. 아틀라스 원의 원장은 벌써 몇백 년이나 대물림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미 결론은 나와 있다.

 별로 떠올리기 싫은 부류의 답이긴 했지만 이내 제피아쪽에서 긍정했다.

 "그래. 햇빛이 고역이래서 일찌감치 눈치챘겠군."

 입술에서 드러난 이가 희미하게 뾰족했다.

 "전부터 나는 사도(死徒)가 되었거든."

 이게, 불로의 이유인가.

 사도는 현대에 무릇 흡혈귀로 알려진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요컨대, 불로장수.

 요컨대, 혈액욕구

 요컨대, 햇빛의 기피.

 직사일광이 아니라고는 해도 간접광은 닿고 있다. 그런데도 동요하지 않는 걸 보니 앞서 말한 대로 대책은 상당히 강구했으리라.

 그 머리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은 라이네스 엘멜로이 아치조르테가 맞나?"

 "··· ···아, 네."

 오라비뿐만 아니라 내 프로필도 파악이 끝난 모양이다.

 "오호라. 이번 각본은 자네들 둘이 여기에 오는 패턴인가."

 "무슨 뜻입니까."

 오라비가 묻자 제피아가 빙글 몸을 틀었다.

 "제피아 경."

 "와인이라도 한잔하세. 엘멜로이의 공주와 로드 엘멜로이. 아니 2세를 다는 편이 좋았던가."

 늘 하는 말까지 선수를 빼앗겨서 오라비가 작게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나 페이스를 빼앗긴 채로 휘둘리는 건 여태까지 없었던 사태였다.

 "당신은, 와인을 마시는 거요?"

 "잡담과 이쪽 성능 분석을 겸한 좋은 질문이네, 로드 엘멜로이 2세. 무슨 소설도 아니잖은가. 기호품으로서는 즐기고말고. 그리고 사고 5번의 연산 결과에 따르면 자네는 대략 그 경우에 정보 공유를 바라지. 피차 시간이 귀중한 신세잖나.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도 여기서 교류를 가지는 편이 나을까 싶네."

 "··· ···친절한 말씀 고맙소."

 잠시 머뭇댄 끝에 오라비가 끄덕였다.

 바로 오두막 안쪽으로 안내받았다. 아마 원래는 벨사크가 쓰던 오두막 집과 비슷한 구조겠지만 이미 생판 다른 곳이었다.

 아까 입구도 그랬지만 대충 목재만 쌓았을 벽은 틈새 바람 하나 들지 않고, 품격 있는 탁자와 의자도 놓여 있으며, 무슨 설비를 갖추었는지 스윽 떠오른 와인병이 자동적으로 내용물을 따라주기까지 했다.

 아마 마술하곤 다르다.

 해묵은 아틀라스의 연금술.

 대치하고만 있어도 덥지도 않은데 땀이 샘솟는다. 자율신경이 이상을 일으킨다.

 덕분에 와인 맛도 제대로 모르겠다. 타닌의 쓴맛만이 목을 넘어갔다. 그런데도 우리가 삼킨 것을 확인한 뒤, 제피아 역시 천천히 자신의 유리잔을 기울이며 말을 꺼냈다.

 "그래. 자네들이 의문으로 여길 점부터 짚어볼까? 일단 블랙모아의 묘지와 내 관계부터 궁금한 게 아닐까? 대개의 각본에서, 자네는―― 이런 곳에서 당신과 만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니까."

 지독히 기묘한 기분이었다.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처음부터 내용 누설을 당하는 감각. 추리 소설에서 결말부터 읽는 짓은 좋아하지만 타인이 그러면 근질거린다. 오히려 가렵기 전부터 피부를 부드럽게 긁히는 것 같다고 표현하면 맞을까.

 "블랙모아란 본디 여기 일족과 연이 있는, 오래된 사도의 이름일세."

 제피아가 말했다.

 "새를 사역하는 마술사 출신의 사도로, 이천 년 이상 전에 이름을 날렸지만 안타깝게도 이 각본에선 소멸하고 말았지. 이 일족은 사도에게 경의를 표해 그 이름을 쓰게 되었다더군. 나 또한 그와 다소나마 연결고리가 있어."

 "연결고리라, 하면?"

 오라비가 묻고 제피아가 끄덕였다.

 "그래. 과거의 연산 결과 중 하나를 풀어보자면··· ··· 경우에 따라서는 그는 내 동포가 되었을지도 몰라."

 "동포? 천 년인지 이천 년인지 전의 사도가?"

 "암. 그 경우, 수로 따지면 스물을 넘었을까? 어디까지나 가능성으로 따지자면 그리될 수 있었다는 것 뿐이지만, 나로서는 그럭저럭 연고가 있는 장소야. 물론 블랙모아와 동포가 될 가능성은 내가 태어나기보다 전―― 몇 가지 있을 수 있던 나뭇가지의 최후로 따져도 현재로부터 천칠백 년 가까이 전에 잘려나갔다마는."

 '··· ··· ··· ···.'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뭔가 중대한 말을 듣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당최 연결되지를 않았다.

 사도와 만난 게 처음은 아니다. 시계탑의 마술사에도 거기에 이르는 연구에 혈안이 된 자들이 있다. 여하튼 노쇠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큰 이점이다. 근원의 소용돌이에 다다를 때까지 시간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결과적으로 대부분 마술사는 자손에게 소망을 의탁하고 가기 마련인데, 교육 및 전달상의 손실을 낮출 수 있다면 다소 사법(邪法)에 손을 대는 자가 나와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다르다.

 큰 범주에서, 인간하고 대화하는 기분조차 안 든다.

 마치 인터넷에 접속한 컴퓨터가 순서든 앞뒤 시간수열이든 싹 무시한 채 검색한 정보만을 마냥 쏟아내는 것만 같다.

 "좀 더 덧붙이자면, 이 묘지를 만든 일족은 사도 블랙모아와 마찬가지로 새를 사역하던 마술사일세. 인간을 관장하는 세 요소, 다시 말해 육체 · 정신 · 혼 중, 혼을 나르는 존재로 특히 까마귀를 중용했었어. 이 부분은 묘지기도 해박할 거야. 일반에서 멀어졌지만 여전히 그들은 구전을 통한 한정 계승의 마술사니까."

 "잠깐만."

 과연 잠자코 있다 못해 오라비가 제지했다.

 "그런 소리를 잇달아 말해도 난처해. 이런 곳에서 당신과 만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혼란스러――."

 거기까지 말하던 중에 중단했다.

 당연한 노릇이다.

 바로 직전, 제피아가 예언한 대사와 판박이였으니까.

 "미안하네. 기분이 상할 줄은 알았지만 대화의 코스트는 절약할 수 있겠다 싶었어. 나중에 비슷한 말을 묻고 싶어지니 두 번 수고할 걸 피할 수 있거든."

 천연덕스레 제피아가 대꾸했다.

 오라비는 와인잔을 든 채로 정지해 있었다. 필사적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붉은 표면이 희미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 ···일종의 , 미래시의 마안이오?"

 "미래시하곤 다르지. 예측의 미래시와는 확실히 가까운 부분도 있지만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야. 설혹 이야기로서 제작 과정이 공통되어도 소설과 오페라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닌가? 아아, 기왕이니 치즈도 들게나. 좀처럼 사람이 오지 않으니 사양하지 말아 주게.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뇌에 주는 에너지가 불가결해."

 이제 와서 치즈와 건포도가 추가되었다.

 양쪽 다 양질이라는 것만은 냄새로 짐작이 갔다. 이쪽도 접시째 둥둥 떠서 탁자에 올라왔는데, 아까 묘지에 맴돌던 실을 이용한 것일까.

 "그럼 대관절 당신은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가능성의 편재라네. 자네가 이곳을 방문할 것은 얼추 확신이 있었지만, 찾아오는 것 중에 어느 각본이 될지는 한정하기 어려웠어. 예를 들어 엘멜로이의 공주를 데리고 올지말지는 별로 자신도 없었거든."

 "――나를, 대려오는 것이?"

 화제가 넘어와서 내가 눈을 깜빡이자 제피아는 낮은 속삭임으로 대꾸했다.

 "우리는 가능성 속을 살고 있지. 천차만별로 분기하는 사건의, 우연히 한 파도에 출렁이고 있을 뿐이라고 해도 돼. 파도를 옮겨 타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다른 파도의 모양을 연산하고 어림잡는 정도는 가능하지. 많은 파도를 연산하다 보면 흔한 각본이 어떤 것이냐는 답도 상상이 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아틀라스 원의 원장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호흡은 하는구나 싶었다. 이 상대와 우리 사이의 공통점을 헤아려봤자 뭐가 되겠느냐 생각을 해도 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탐정이 아닐세. 추리 따위 안 해. 가능성은 무한하진 않아도 무수히 퍼져 있는 것이니 그 하나하나를 다 검증하긴 불가능하네. 이건 검증하는 동안에 다른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문제 때문이지. 아킬레스가 거북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와인을 빙글 흔들면서 말하는 제피아는 데이터를 끝도 없이 테이프로 뱉어내는, 케케묵은 SF 영화의 계산기 같다.

 마술사인 나조차도 거의 망발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가능성의 분기는, 결코 무한하지 않아."

 노래하듯이 한 번 더 제피아가 말했다.

 "무한하다는 확산에는 이 우주마저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야. 그러나 인류가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하긴 해. 그래서 무대와 인물에도 한정을 걸고 계산할 수 있는 곳까지 추려내는 것이 제피아라는 존재의 역사였을지도 모르지."

 "··· ··· ··· ···."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그렇군··· ···. 여기에 있는 건 계산의 화신이다.

 마술사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존재. 과학과도 아득히 먼 옛날에 결별한 존재. 한결같이 쌓아 올린 숫자와 해석의 결과는 이 현실조차 하나의 시물레이션으로만 간주한다. 무수히 계산해온 가공세계(각본) 중 하나로서, 지나치게 높은 시점에서 우리와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마술협회임에도 그 시점은 이미 차원이 다를 만큼 동떨어졌다. 격이 높거나 낮은 게 아니라, 지닌 전제와 서 있는 토대가 지나치게 다르다. 아마도 오라비 같은 미숙한 마술사가 아니라 다른 로드가 이 자리에 있어 봤자 이 결과는 거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 ···애당초, 살/아/ 있/기/는/ 한 것일까.

 지나치게 높은 곳에 있는 시야는 이미 단순한 재능이나 기술의 틀에 매어둘 수있는게 아니다.

 사람은 새가 될 수 없다. 빌딩에서 떨어지면 추락할 뿐이다. 너무나도 동떨어진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여기서 떨어지면 편해진다는 자살욕구에 몇백 년씩 버티는 건 아무리 아틀라스 원이라도 까다롭기 그지없는 미션이지 않겠는가.

 사도가 되어 일반적인 생명활동마저 진즉에 그만둔 사고기계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세계를 보고 있을까.

 나는 시계탑의 그 어떤 마술사에게도 느끼지 못한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마술이 강대하고 신비가 오래 묵은 게 다가 아니다. 완전히 이질적인 능력과 역사에 뒷받침된 또 하나의 마술협회.

 아틀라스 원.

 과거에는 같은 마술협회였음에도 길을 갈라선 상대.

 마술의 세계에는 진실 같이 전해지는 말이 있다.

 아틀라스의 뚜껑을 뜯지 마라. 세계를 일곱 번 멸할 거다. ――이런 말이.

 오라비는 살짝 끄덕였다.

 "확실히, 의의가 있는 얘기였다고 생각하오. 아니, 아마 의의가 있는 얘기였다고 나중에 깨닫겠군."

 "역시 대단해, 엘멜로이 2세. 시계탑의 마술사 중에서도 자네는 대체로 그 지점에 가장 빨리 다다르는 인물중 하나일세."

 "칭찬해 주셔서 영광이오만, 아마 자신감이 부족할 뿐일거요. 남의 말을 쉬이 받아들이는 건 실력이 부족한 걸 알기 때문이야."

 "그게 바로 세계를 보다 좋게 하는 요인이고말고. 자네의 영향은 자네 생각보다 훨씬 먼 곳까지 닿네. 자네가 세계에 드리운 그림자는 자네 인생의 비거리마저 추월해. 그렇기에 자네 스승이 무의미하게 사라진 것에도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

 "케이네스 선생을 들먹이지 마."

 처음으로 오라비가 언성을 높였다.

 일어선 기세로 의자가 뒤로 쓰러지며 큰 소리를 냈다.

 "··· ···실례했소."

 오라비가 고개를 숙였다.

 "아니, 내 쪽이 너무 깊은 얘기를 했네. 이참에 사과 대신 한 가지 경고해 두지."

 제피아가 한 손을 들고 말을 덧붙였다.

 "자네는 지금부터 몇 가지 결단에 쫓길 거야. 어느 쪽이 좋을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무대에 서는 배우는 그만한 각오를 마쳐 두는 게 좋겠지. 이 여행에서 자네가 택할 각본은 필시 성배전쟁에 어떻게 관계할지 결정하게 될테니까."

 "성배전쟁··· ···!"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아, 그 때문에 이 묘지에 찾아왔다. 성배전쟁에서 승리할 수단을 손에 넣고자 오라비는 이 마을을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이토록 삼라만상을 계측하길 그치지 않는 제피아라면 그 소망을 알아도 이상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성배전쟁에 어떻게 관계할지 결정하게 된다는 건?

 의문을 풀기보다 먼저 이변이 발생했다.

 우리가 들어온 통로에서 또 하나의 인영이 나타난 것이다.

 "··· ···너희가 왜 이런 곳에?"

 낮은 음성은 들은 기억이 있었다.

 "여어, 벨사크 군. 자네는 늘 시간을 딱 지키는 군."

 제피아는 케이프 속에서 고풍스러운 회중시계를 꺼내고 입술 끝을 슬며시 끌어올렸다.


 "설마. 저/것/과 만나고 있었을 줄이야."

 씁쓸한 목소리로 벨사크가 말했다.

 바로 옆의 숲속 그늘이었다.

 풍차 오두막에서 떨어져 이동해 온 곳이었다.

 벨사크는 제피아와 고작 몇 분가량 대화만 나눈 뒤 곧장 오라비와 나를 데리고 풍차 오두막에서 나왔다.

 오후의 바람에 나무 꼭대기가 흔들렸다.

 나는 일단 몰래 호흡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피폐한 뇌가 아직 회복하지 않았다. 저 상대와 잠시 대화만 나누었는데―― 그것도 태반은 오라비에게 맡겼건만, 속의 속까지 끈적거리는 피로가 묻어난다. 이래 봬도 시계탑의 속물들과 왠만큼 산전수전을 겪었다는 자신은 있었는데, 그 아틀라스 원의 원장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내 인식이든 시간순서든 현실이든, 모조리 뒤섞고 흔드는 것만 같은 체험이었다. 아틀라스 원의 구성원이 다들 저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그렇다고 가정하면 그들이 영위하는 사회는 얼마나 기형적일까. 아니 그건 사회라고 말할 수나 있을까.


여기까지가 그레이를 내제자로 대려오기전 그레이 고향에서 제피아와 만나고 대화하는 장면

 

 


현재 그레이와 다시 그레이의 고향에 오고난후 제피아를 만나는 부분

 


 내부는 라이네스의 말대로 기묘한 수정 기기가 빛나고 있었다. 마치 신비로운 동굴처럼 빛을 통신의 매개로 삼는 수정들은, 우리 눈에 기계라기보다 미지의 세계에 숨은 생물처럼 비쳤다.

 그러나 나와 스승님이 굳어버린 이유는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

 "이건 또 참. 묘지기 아가씨가 스스로 돌아올 줄이야."

 침착한 목소리가 우리를 마중한 것이다.

 스승님이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그러한 광경은 예상했었을 터. 그러나 예측과 현실은 다르다. 상상하던 상황이 눈앞에 나타나면 역시 충격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다.

 "··· ···솔직히, 당신이 아직 여기 있을 줄은 몰랐소. 모종의 단서가 남아있길 바라긴 했지만."

 "그리도 신기한가, 로드."

 상대는 큭큭 웃었다.

 옅은 와인 향을 두르고 있었다.

 이런 외딴 마을의 등장인물로서는, 그 와인이든 재질도 확실치 않은 화려한 케이프든 간에 과할 만큼 고급스러울 것이다.

 "그래, 그렇지.  마을 사람은 전원 사라졌을 테지. 나 하나가 여기에 남아있단 사실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아틀라스 원의 원장―― 제피아 엘트남 아틀라시아는 천천히 끄덕였다.


이후 시점이 플랫과 스빈 파트갔다가 다시 2세와 그레이, 제피아 시점

 


 "제피아··· ··· 씨··· ···."

 나는 쥐어짜듯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평소라면 그런 문답은 스승님에게 맡겼을 텐데 이번만은 직접 도화선을 당긴 이유는, 역시 고향에서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일까.

 "흠, 이 패턴에서도 자네에게는 몇 번쯤 전갈이나 자료전달을 부탁했었지. 하긴 웬만한 경우에는 벨사크 선생이었지만."

 "대답해 주세요."

 나는 거듭 말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무슨 일이 있었느냐라."

 제피아의 목소리가 살짝 먹먹하게 들렸다.

 "질문의 방향성으로선 틀린 게 아니지만 좋지는 못하군. 각본에 물을 말이라면 주제를 축으로 삼아야지 않겠나. 주제가 중요하다는 진부한 말이 아니라, 이야기에서 소재가 주제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라네."

 "··· ··· ··· ···."

 장황한 말에 가슴 일부가 삐걱 소리를 냈다.

 짜증이 아니다. 공포와도 다르다. 눈앞의 상대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는 감각. 인간이라고 여기며 대화하던 게 사실 정교한 인형이었다거나, 표유류인 줄 알았던 상대가 사실 벌레였다거나, 그런 감각이다.

 마술사 상대로는 늘 느끼고 있었지만 이 상대는 그 어느 것과도 다르다.

 이래저래 익숙해지기 시작한, 시계탑의 마술사들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

 "그 점을 고려하고 대답하지. 여기서 있었던 건 단순히 케케묵은 계약이야."

 "계약?"

 "내가 원장이 되기 훨씬 전에 이루어진 계약이지. 아아, 기왕 돌아왔으니, 그래. ――내부 사정에 관해 좀 더 설명해볼까."

 제피아는 눈길을 스승님에게로 움직였다.

 "명색이 로드란 입장이지 않나. 아틀라스의 계약서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세계에 일곱 장 뿌려졌다는 계약서 말이오?"

 "맞아, 일곱 장의 계약서야. 이 계약을 발동한 대상에게 아틀라스 원은 반드시 협력해야만 하네."

 제피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야 마술의 속사정에는 어둡지만 매우 중대한 이야기라는 건 알겠다.

 아틀라스 원이 꼭 따라야 하는 일곱 장의 계약서. 예를 들어 아틀라스 원이라는 말을 시계탑으로 치환하면 그 효력이 어느 정도 사태를 일으킬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스승님외에 만난 로드라면 3대 귀족인 로드 밸류엘레타가 있지만, 그 수준의 인물이 계약에 따라 협력한다면 세계에 얼마나 큰 자취를 남길까.

 라이네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틀라스의 뚜껑을 뜯지 마라. 세계를 일곱 번 멸할거다.

 

 스승님이 한 박자 띄우고 말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 닥터 하트리스가 관계되어 있나··· ···?"

 "흠. 닥터 하트리스라."

 제피아가 근처 책상 위로 손가락을 뻗쳤다. 수정이 뭔가에 울려서 '쨍' 하고 딱딱한 소리를 냈다. 아름다우면서 왠지 쓸쓸한 소리였다.

 "확실히, 나는 그 사내와 거래했네."

 "――――큭."

 스승님이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은 어디에 있나. 아니, 하트리스는 무슨 생각으로 당신에게 접촉했지?"

 "이런, 질문이 퍽 직설적으로 변했군. 과연, 내가 조사하던 쪽과는 다른 범위지만 그자는 자네에게 꽤 인상 깊게 접촉한 모양이야."

 "대답은 안 해주시겠소?"

 다그치던 스승님의 표정이 별안간 흔들렸다.

 수정이 다시 소리를 낸 것이다.

 공명은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몇 겹씩 거듭하며 우리를 에워싸듯이 울려 퍼졌다. 마치 소리의 결계처럼 연쇄되는 음향이 우리를 몰아넣고, 제피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아, 기동했군. 이 마을에는 아틀라스의 병기가 있어."

 "――――흡!"

 숨이 막혔다.

 스승님도 눈을 부릅떴다.

 "아틀라스의 7대 병기. 그 성질은 재연(再演). 나로서도 정든 물건이지. 정식명은 없지만 로고스 리액트라며 부르고 있네."

 "··· ···무슨, 말을 하고 있지?"

 "그러니까, 사정 설명 말이야. 로드 엘멜로이 2세. 전부 자네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일세."

 "··· ··· ··· ···."

 라이네스가 이야기하던 것과 마찬가지다. 모조리 앞질러가서 핵심만 전달받는 감각.

 뭐가 뭔지 죄다 모르겠는데, 그런데도 지독하게 중대한 사실을 이야기한다는 것만이 저절로 이해된다. 아아,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갑자기 핵병기가 있는 곳과 기동 코드라도 가르쳐 주는 기분이다.

 너무나도 가벼운 투로, 피시&칩스라도 사겠다고 하듯이.

 "그건··· ···."

 머뭇대는 스승님 앞에서 제피아가 스읍 숨을 들이쉬었다.

 "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

 그 소리는 인간의 목에서 나왔다고 여길 수 없을 만큼 무기질적이고, 볼품없이 쉬었으며,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음성이었다.

 고장 난 오르골과도 비슷하게, 차라리 미쳐버릴 만큼 한결같게.

 멸종한 늑대 울음소리와도 비슷하게, 이미 되찾지 못할만큼 우스꽝스럽게.

 "과거를 현재로, 현재를 과거로, 거꾸로 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돌려라."

 거기서 말을 그친 제피아가 입술을 끌어 올리며 과장스럽게 인사했다.

 "다시 말해 이건 단순한 가능성의 잔재야. 세계의 선택에 따라서는 왈라키아로 전락했을 나와 닮았음에도 결정적으로 다른 현상 중 하나지. ··· ···아아, 그래. 머나먼 극동의 신비를 본떠서 타타리의 밤이라고나 부르면 될까."

 단정한 입술이 일그러진다.

 마찬가지로 시야가 꾸불텅 일그러졌다.

 나뿐만 아니라 스승님도 마찬가지라는 증거로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온 세상의 빛이 헐레이션을 일으키고 동시에 어둠과 뒤섞이며 예전에 보았던 극동의 수묵화 같은 흑백으로 모든 것이 일그러진다.

 "제피아!"

 스승님이, 외쳤다.

 신경은커녕 마술회로마저도 그 일그러짐 속으로 빨려들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미각도 촉각도, 그 무엇도 정상적인 정보를 잡아내지 못했다. 나는 천공으로 낙하하는 새이며, 유충으로 부화하고자 하는 나비이고, 건드리는 것 전부를 얼리는 불꽃이었다.

 

 "――밤을 해매라."

 

 제피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실이 아닌 허구를 찾도록. 자네가 풀어야 할 허구의 수수께끼를 추구하라. 그것이야말로 자네가 당도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일세, 로드 엘멜로이 2세."


이후 로고스 리액트 발동 2세와 그레이시점 진행

 


 

6권 마지막 케이 현현직전 부분


 인과는 뒤엉킨다.

 시간은 뒤얽힌다.

 거의 모든 이들의 안구에는 비치지 않으나 그것은 복잡하게 둘러쳐진 실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흐름에서 각자의 의지로 그 인과와 시간을 매고 이음으로써 살아가고 허물어지다가 이윽고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이곳에 그 실을 응시하는 자가 있다.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저녁나절이었지만 실제로 그런지도 알 수 없다. 최소한 시각상으론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 뿐. 과연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도 수상쩍은 고요한 공간에 좀비의 습격을 받는 듯한 신음과 함께 손이 올라왔다.

 "으으으으으으으으, 교수님 아녜요. 좀비에는 끈끈이, 러버링 액션에는 낚싯대가 있어야··· ···."

 "··· ···그래, 깨어났나."

 말이 내려왔다.

 그 소리에 신음하던 소년이 꿈틀꿈틀 들썩거리다가 일어났다. 눈을 쓱쓱 비비고 케이프를 두른 남자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검색하는 데 몇 초가 더 걸렸다.

 "아, 망했다! 모르는 사람이네요, 당신!"

 "흠. 자기소개한 기억은 없으니 그 물음은 옳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거기서 술식에 간섭할 줄이야. 아틀라스 원의 구성은 근본부터 시계탑과는 달라. 그런데 거의 즉흥으로 해석하고 역류까지 해치웠어. 솔직히 마술사의 실력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영역이지만 상식에서 벗어난 건 틀림없군. 대체 자네들은 누구지?"

 "넵! 플랫 에스카르도스와, 르 시앙이랍니다!"

 "그러니까, 너! 태평하게 자기소개하지 마! 아니 그보다 내 이름은 그거냐!"

 등 뒤에서 또 한 명의 곱슬머리 소년이 고함쳤다.

 "아니 그치만, 인사는 인간의 기본이라고 교수님이 그랬잖아! 르 시앙의 마력이 없었으면 그런 건 억지로 간섭할 수도 없었고!"

 "하라고 말 안 했어! 맘대로 남의 마력을 뜯어가서 악용한 건 네 소행이잖아! 내가 협력했던 것처럼 퍼뜨리지 마!"

 왁왁 소란피우는 소년들을 내려다보고.

 "아하. 역시 소문으로 듣던 엘멜로이 교실인가."

 남자는 수긍했다.

 "자네들 두 사람은 그 시점의 마을에는 없었으니 말일세. 재연에 적용할 수 없었어. 대단히 미안하네만 그 사실을 받아들여 주길 바라네."

 "무슨 소리죠?"

 "말한 바와 같네."

 시선을 옮겼다.

 바로 옆에 수정구슬 같은 구체가 떠 있었다. 표면에는 어딘가 어두운 경치가 비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남자는 그 영상을 줄곧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뿌옇게 비친 사람의 모습에 플랫도 눈을 부릅떴다.

 "교수님! 그레이?!"

 "··· ···그런데 기실 나 역시 저건 상상하지 못했어. 무수한 각본을 준비하고 무수한 결말을 감수해 왔지만, 이와 같은 장면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

 남자의 눈매가 천천히 가늘어졌다.

 "건넨 수수께끼는 지극히 심플해. 예상한 바로는 이들은 그 수수께끼를 해결하게 되지. 저곳에서 숨진 소녀에 대해 찾게 될 거야. 어째서 그녀가 죽었는가, 왜 그 시간이었는가, 지하의 묘지와 마을에 숨겨진 해묵은 수수께끼를 향해 매진하게 됐을 걸세. 탐정 소설이라면 친숙한 흐름이지. 그들의 사상과 성능(스팩)으로 배역을 주면 늦든 빠르든 어떤 식으로나 당도해. 물론 성패와는 별개니까 그 과정에서 그들이 죽을 가능성도 컸지만."

 한없이 유창하게 연금술사가 읊었다.

 "아아, 어쩌면 자네들 탓일지도 모르겠군. 노파심에 말해두면 화내는 게 아닐세. 무대와 배우의 트러블, 관객의 반응 여부에 따라 극이 천변만화하는 것이야 당연한 노릇이지. 애드리브가 하나도 없는 극은 완벽할지도 모르지만 살아있질 않아. 적어도 생물이 하는, 생물에게 보여주기 위한 극은 살아있어야 마땅하지."

 말의 의미는 이해할 수 없다.

 이 남자의 말은 남자 안에서 완결하고 있다. 타인에게 건네는 말이 아닌 이상, 표층의 의미와 실제 의미가 얼마나 동떨어졌는지는 짐작할 수도 없다. 애당초 수백 년 이상 존재하고 있는 괴물과 정말로 언어 개념을 공유하고 있는지도 미심쩍은 노릇이다.

 "하지만··· ··· 그런데, 아아, 불규칙 요소란 참으로 그립군."

 도취와 함께 목소리는 흘러나왔다.

 

 제피아 엘트남 아틀라시아는 그/것/을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 로고스 리액트 세계에 케이 구현후 6권끝

 

제피아 등장씬은 이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