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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스빌리

2019.07.05 12:39

마그누스 조회 수:18

"그만큼 성배전쟁에 소상하던 자네가, 수상쩍은 성배라느니 그런 초발급의 물건이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느니 말하지 않았던가. 소환되는 영령에 관해서, 봉인지정국이 움직이는 것 역시 충분히 알고 있던 자네가, 왜 성배에 관해서 그리도 혹평하지?"

그러고도 또 다시 잠깐 올가마리는 묵고했다.

왠지 아득한 눈초리가 되어서, 그러고도 이윽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옛날, 아버지가, 마리스빌리 아니무스피어가 말했거든."

고운 입술이 말을 자아냈다. 올가마리의 아버지라면 곧 천체과의 현 로드 말고 없으리라. 스승님과 그 활달한 노파 로드 밸류엘레타에 이어지는, 세 번째 로드. 시계탑을 다스리는 열두 명의 왕 중 한 명.

"후유키의 대성배는 써먹을 게 못 된다고."

"대성배가 써먹을 게 못 된다?"

앵무새처럼 중얼거리고 스승님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성배?'

나도, 그 말을 되새김질했다.

성배 전쟁이란 일곱 명의 선택받은 마스터가 이스칸다르 등 일곱 기의 영령과 함께 싸우며, 살아남은 한 쌍이 소망기가 되는 성배를 손에 넣는다......는 그런 흐름의 마술 의식이었을 터다. 하지만 그 대성배가 써먹을 게 못된다 함은?

같은 사고에 당도했는지 스승님도 질문했다.

"그건, 무슨 뜻이지?"

"몰라. 아버지는, 그 선대 로드 엘멜로이가 죽은 성배전쟁이란 것을 한동안 열심히 조사했었는데 결국 그런 결론으로 중지했단 거야. ......그래서, 나는 성배전쟁이라는건 사기라고 생각했어. 무슨 속임수로 영령소환을 가능하게 한 것 같은데, 소망기가 될만한 초발급의 물건은 있을 수 없다고. 아마. 그런 의미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을 일단 끊으면서 올가마리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이라면, 다른 의미를 알겠어? 제4차 성배전쟁에서 싸운 당신이라면?"

"......아니, 나도 모르겠네."

스승님이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도 대성배를 직접 목격한 건 아니야. 이후에 여러 가설을 세웠지만 확증을 얻기엔 이르지 못했네. 어쩌면 제5차 성배전쟁에 참가하면 그런 의문의 답도 나올까 싶었는데."

나는 짧은 말과 반비례로 긴 시간을 상상했다.

제4차 성배 전쟁으로부터 10년. 스승님의 성질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성배전쟁에 관해서 고민했을까. 어쩌면 그건 내가 이 용모로 고뇌한 농도에 필적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머리가 안 좋은 나는 스승님과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 때때로 방자한 친근감을 느끼고 마는 건. 아픔에 참다못해 비명을 지르고 싶은, 그 찰나만은 나와 이 사람은 공유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

 

 

"살해당하기 전에 나는 트리샤 펠로즈와 말을 나누었지만, 어느 극동의 의식에 지나치게 밝던 것 같더군."

성배 전쟁이라는 이름을 일부러 덮었다. 사역마 중 몇 마리 쯤은 의혹의 기척을 띄웠지만 극동이라는 단계에서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은 모양이다. 전에 스승님도 말했었지만 성배전쟁이란 건 몹시 마이너한 의식인 것이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건 자신이 죽었을 때를 대비한 힌트였을 거요. 아무 일 없으면 단순한 잡담으로 그치지. 사건이 일어난다면 단서라고까진 못해도 그 계기가 되고. 그녀의 미래시는 예측, 측정과 다르게 비극적인 미래도 피할 방도는 있지만, 그에 이를 가능성은 보였을테지."

자리의 반응을 살피면서.

"동시에 자신의 머리를 숨긴 건 두 가지 의미가 있었소."

스승님이 두 손가락을 세웠다.

먼저 중지를 접었다.

"한 가지는, 자신의 죽음이 7년 전의 사건과 관계있다는 다잉 메시지. 허수 마술로 만들어진 차원의 틈에는 시간의 경과가 의미를 잃지. 한마디 정도라면 말을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심산은 있었을 거요."

이쪽은 알기 쉬운 이유였다. 어쨌든 그 다잉 메시지로 칼라보의 이름이 지적되었기에 칼라보를 범인으로 간주한 것이다.

어떻게든 이해했을 즈음 스승님이 검지를 접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자신의 마안을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요."

"마안을, 이용 당하지 않기 위해?"

올가마리가 퍼뜩 뭔가를 깨달은 듯이 되풀이했다.

"......즉, 당신은 7년 전의 피해자가."

"맞소, 7년 전 사건의 피해자는ㅡㅡ 그 전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마안의 소유자였을 거요."

스승님의 결론에 열차는 다시 경매와 똑같은 열기를 일으켰다. 마안 보유자 연속 살인 사건이라는 무시무시한 과거를 내비쳐서 마술사들 전원의 관심을 억지로 불러 일으킨 것이다.

그 말에 올가 마리는 다른 방향으로 치고 들어갔다.

"하지만 마안을 적출해 타인에게 이식할 수 있는 건 이 레일 체펠린뿐 이잖아요. 그 밖에도 불가능하진 않다고 해도 성공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마안을 이용했다고 할 거면 당신은 이 열차가 7년 전부터 공범이었다고 하고 싶은가요."

"설마."

스승님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범인은 마안만이 아니라 머리 자체를 강탈한 거겠지."

그 의미는 바로 이해되진 않았다.

곤혹과 의혹이 차량 내에 뒤얽히다가 잠시 지난 뒤에야 비로소 올가마리의 낮은 신음으로 변하였다.

"설마...... 당신은...... 그 머리가......"

 

"그렇소. 피해자로부터 가지고 간 머리는, 살.아.있.었.소."

살아있었다.

믿기 어려운 말을, 스승님이 입에 담았다.

"딱히 어려운 얘기가 아냐. 뇌와 안구와 그것을 연결하는 경로만 확보할 수 있으면 마안은 발동할 수 있어. 여하튼 마안은 독립된 마술회로를 지니고 있지. 수족도 내장도 신경도 필요없을 걸. 물론 혈액 등을 확보하기 위한 술구나 마술은 필요하지만, 개나 원숭이의 머리를 절단해 인공심폐로 살려두는 정도는 수십 년 전의 과학도 해냈어. 뛰어난 마술사라면 더 부담 없이 해낼 수 있겠지."

담담히 이어지는 설명을 누구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판테모리움ㅡㅡ 그 벽에 박제된 무수한 마안이 갑자기 일제히 웃어대는 듯한 착각이 엄습했다. 그만한 처절함이 지금 추리에 담겨 있었다. 지금 당장 주저앉아 토해버리고 싶어 참지 못할 기분이었다.

"즉, 피해자의 머리만 살려두면 마안은 사용 가능한 거요. 이거라면 도망칠 염려도 없거니와 반항할 염려도 거의 없지. 레일 체펠린을 이용할 필요도 없고, 더해서 복수의 마안을 마음대로 써먹을 수 있어. 마술사로서도 비인도적인 수법이다마는. 아아, 이만한 마안이 모이면 극.동.의. 의.식.을 조사하는 것쯤이야 너끈했겠지."

"............"

누구나 침묵했다.

아무리 마술사라고는해도, 그런 발상을 누가 가지고 있을까. 목을 친 이유가, 죽었다고 여기게 하고 머리만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라니, 그런 생각에 다다를 수 있을까.

심지어 그게 성배전쟁을 조사하기 위해서 였다니?

"잠깐."

올가 마리가 제지했다.

"당신, 방금 말투면, 트리샤는."

"그렇소, 트리샤 펠로즈는 7년 전 사건의 관계자요. 그것도 범인 측의."

아연실색하며 올가마리는 말을 잃었다.

이제 와서 옆에서 듣던 나조차 충격을 면치 못했다. 왜냐면 그렇다. 단순히 사건의 피해자라고 여기던 상대가 더 처참한 과거의 사건에서 범인쪽에 관여하고 있었다니,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힘없이 올가마리가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렇다면, 트리샤는...... 왜......"

소녀는 부정하지 않았다. 부친이 이야기했었다는 성배전쟁의 지식이 그것을 막고 있었다. 안 그러면 어떻게 부친은 대성배가 써먹을 게 못 된다는 정보를 모을 수 있었던 거나고.

하지만.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스승님은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범인 측의 관계자지만 트리샤나 자네 부친이 범인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네, 오히려 그녀는 7년 전의 범인을 알고 싶었던 거겠지."

"무슨, 소리야......?"

고개를 든 올가마리에게 스승님은 타이르듯 이야기했다.

"아니무스피어는 아마도 의식을 조사하기 위해서 외부의 협력자에게 의뢰했을 거야. 다만 수단까지는 전달받지 못했을테지. 로드인 춘부장께선 희미하게 깨달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속사정까지 소상하게 전달받았더라면 미스 트리샤가 이제 와서야 칼라보 선생과 접촉하자는 생각은 안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