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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에는 또 한 명, 과묵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일흔은 거뜬하게 넘겼으리라. ㅡㅡ흑인종(니그로이드) 노인이었다. 눈썹 주변에 오래된 칼자국 흉터가 있는 것이 노인에게 마피아 같은 인상 또한 주었다.

포도송이에서 한두 개 뜯어 입에 넣고.

"칼라보 프램튼. 성당교회 사람이다."

툭, 속삭였다.

장마리오를 제외한 전원이 긴장을 뻗쳤다.

성당교회는 그 이름대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진 「보편적인」 종교가 기반인 조직이지만, 마술협회와는 많은 면에서 대립하고있다. 마술협회가 자기들 손으로 신비를 관리하려는 데에 대해서 성당교회는 자기들 외의 신비는 남김없이 괴멸시키려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카울레스가 웃옷 속으로 손을 넣고 미소지은 상태의 히시리 또한 한 발짝 물러서 거리를 벌렸다.

노인 또한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여태까지 셀 수도 없을만큼 서로 죽고 죽인 역사가 양쪽 사이에 휘몰아치고있는 것만 같았다. 평소 마술전에는 참가하지 않는 스승님마저도 표정이 단단히 굳었다.

그 긴장을, 새 목소리가 깨트렸다.

 

 

 

 

 

 

 

 

 

"한 가지 여쭈어 괜찮니까?"

스승님은 노인에게 말을 건냈다.

융단에 무릎을 짚고 늘 쓰는 돋보기를 꺼내서 이곳 저곳 조사하면서 말이다. 혈액에 약물을 떨어뜨리거나, 부지런히 메모하는 모습은 마술사라기보다 한 세기도 더 지난 옛 탐정 같았다. 그런 스승님이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면도 있긴 하지만.

그 물음에 근처 의자에 앉은 채로 칼라보가 입을 열었다.

"뭘 말인가."

"당신은, 마술사가 밉지 않습니까?"

성당교회와 마술협회는 양립할 수 없다. 그건 단순히 세력이나 역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더 사상적인 방향이다. 신비를 은닉하며 지키고자 하는 자와, 자신들 외의 신비를 부정하는 자 사이의 결정적인 도랑.

그러자 노인은 작게 혀를 찼다.

"밉지, 솔직히 말하면 이 열차에 있는 모든 마술사는 신에게 구원을 구걸한 뒤, 모조리 연옥에서 영혼을 불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 중일세."

굳이 연옥이라고 하는만큼 이 신부는 양심적일지도 모른다.

그곳은 천국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영혼을 정화하기 위한 곳이기 때문이다. 괴롭기는 해도 지옥과 다르게 진정한 죄인이 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지. 내게 위임된 흑건은 동포를 애도하는 소녀를 꿰기 위한 게 아니야."

간결하지만 신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 대사를 곱씹다가 스승님은 천천히 물었다.

"칼라보 프램튼, 당신은 감수형 마안을 가진 게 아닙니까?"

노인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느릿하게 시선을 올리고 녹슨 쇠가 스치는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째서 말인가?"

"당신 연세를 감안하면 이 열차에 찾아온 이유는 마안의 구매보다 매각이라고 추측하는 편이 무난하겠죠. 애초에 성당교회는 세례영창 외에는 인정하지 않을 텐데요. 검시를 사서 맡은 건 자신의 마안이 유용하리라 여겼기 때문 아닙니까."

그렇다. 비슷한 말을 이베트도 했었다. 스승님이 그 자리에 찾아온 때는 이베트의 설명이 끝난 뒤였지만, 거의 같은 결론에 당도했던 모양이다.

잠시 뒤.

"......못 숨길 것 같군, 로드."

검은 피부의 노인은 무겁게 속삭였다.

눈썹 주변의 옛 흉터를 슥 손가락으로 쓸고 말을 이었다.

"내 눈은, 과거시의 마안이네."

"과거시."

미래시의 반대.

올가마리 일행이 말하던, 「무지개」 위계의 마안은 아닌 것일까?

"그래. 대단한 건 아니야. 마술사가 말하는 노블 컬러라는 축에는 일단 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황금」의 위계라느니 소란 피울만한 게 아닐세. 하지만, 그래...... 아가씨는 오늘 아침 로드의 머리를 세팅했지?"

"아. 네."

"손 깨나 익었군. 로드가 5분만 더 재워달라고 말했지만 결국 아까 카울레스 군에게 부축받아서 다 끝냈는걸. 음, 뭔가 조사하는 것 같네만 사건과는 관계없나."

"............흡."

한순간, 숨을 집어삼켰다.

칼라보가 말하려던 게, 빼앗긴 성유물의 조사 였기 때문이다.

잠이 덜 깬 스승님과의 자잘한 대화는 스스로도 잊었을 정도의 사항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과거시라는 말의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정도 내용은 보이네, 하기야 희망하는 시간과 장소를 언제나 지정할 수 있는, 편리한 것도 아니네만."

"즉, 당신보다 마안쪽에 주도권이 있단 말입니까?"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어, 특히 마술이나 신미가 짙은 시간에는 이끌리기 쉬우니 도움이 안 되진 않지, 그래도 이 나이 먹자니 마안에 멱살 잡혀 끌려갈 때도 잦아지더군. 원래는 이걸 팔아치울 작정이라 경매인에게도 얘기해놨어. 내일 카탈로그에는 실릴걸."

 

 

 

 

 

 

 

 

 

"나한테 과거시란 더 난폭한 것이라네."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예를 들면 뇌수만을 끄집어내서 낡은 흑백 필름과 함께 용액에라도 담그는 짝이야. 그 세계에는 안구 같은 건 없는데 정보만은 멋대로 침략해오지. 그래, 음. 필름 속의 등장인물에 씌는 느낌일까. 그 시점의 정보가 단번에 흘러드는 나와, 어디까지나 외부(현재)에서 필름을 보는 내가 동시에 존재하는 거지. 못 알아먹을지도 모르겠네만 실감으로 치면 그런 식이야."

"............"

"인간은 보는 것에 사로잡히지. 두 개의 것을 한 번에 집중해서 볼 수 없게 뇌가 만들어져 있으니까. 현재와 과거의 내가 따로 따로 있어도 볼 수 있는 건 하나뿐. 아아, 즉 과거 본다는 건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네. 나는 이 눈을 의식하고 나서 한 번도 현재를 살아간 적이 없어."

그 말은 몹시 가슴을 후려쳤다.

트리샤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것은 남과 다른 세상을 보는 마안ㅡㅡ 스승님이 말하는 감수형 마안을 가진 사람의 숙명 같은 것일까.

예를 들자면, 10 년 전부터 내가 나만의 몸으로 살 수 없어진 것처럼.

 

 

 

 

 

 

 

 

 

 

이베트의 외침과 불꽃에 질풍 같이 흑건이 응답했다.

잇달아서 요악한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솜씨는 이미 인간 모양의 검은 폭풍으로 헷갈릴 지경.

늙은 나이라곤 털끝만큼도 느끼지 못할뿐만 아니라 자유로이 약동하는 몸은 야생의 맹수마저 당해내지 못할 정도의 격렬함을 실컷 발로하고 있었다.

하얀 눈이 흩어지며 검은 칼날이 춤춘다.

옆 얼굴에 새겨진 흉터와도 비슷하게, 강렬하게 내달린다.

 

 

 

 

 "앗 아 따따따 자, 이쪽!"

이베트가 안내하는 길을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으며 검은 사제복이 나부꼈다.

나도 나뭇가지의 습격에 대비하면서 달리는 칼라보의 옆에 나란히 섰을 때였다.

"으ㅡㅡ!"

발밑이 갑자기 무너졌다.

거뭇거뭇한 구멍 안으로 낙하한다고 생각한 순간, 칼라보의 손이 이쪽의 위팔을 잡고 훌쩍 위로 잡아당겼다.

"고, 고맙습니다."

"그곳은, 좀 전에 그렇 눈이 표면을 덮었을뿐이었네."

과거시.

노인이 가진 마안에는 그런 활용법도 있었는가. 그렇다고는 해도 극도의 집중을 강요하는 전투 도중에 과거의 상황까지 관찰하고 이용하는 건 어떤 수련으로 성취했을까.

빠르게도 몇백 미터 가랑을 답파했지만 칼라보의 움직임은 쇠하지 않는다. 이쪽 움직임을 커버하면서 마성의 가지를 적확하게 봉하는 솜씨는 오랜 세월 팀으로 전투해 온 이야말로 쌓은 지혜였다.

 

 

 

 

 

 

 

"정말로, 칼라보 씨가 7년 전의 사건을?"

"모르겠네."

노인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주름투성이 손가락이 지금은 공연히 서글펐다. 손가락은 삐걱거리듯 연거푸 떨고 있었다.

"나는 정말로, 자신이 그 사건에 관계했던 것을 바로 직전까지 잊고 있었어."

"......기억이, 없다?"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너무나도 내용이 이 노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이어지는 말에 납득하고 말았다.

"그 사건만이 아니야. 요새는 자신의 과거에 관해서 이것저것 벌레 먹은 것처럼 구멍투성이가 되고 있었네......."

아연히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스승님도 딱딱한 표정인 채로 노인의 폭로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과거는 보여....... 싫어도 강요받지. 눈을 뜨든 감든 간에, 그런 것은 관계없다고 비웃듯이 쏟아져 들어 와. 하지만 그 이상의 기세로 자기 자신의 기억은 자꾸자꾸 망가져가네. 그건 그런 마안이었어."

마안을 포기하려고 한 것은 그게 이유였던가.

무시무시한 아인나슈의 새끼와 맞서더라도 마안 경매를 중지시키지 않겠다고 하던 것도 아마 같은 이유. 이 이상 망가지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는 이 열차에 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사실을 밝히고 만다.

"......즉, 당신은 그 마안을 전혀 제어 할 수 없었군요."

스승님이 그 사실을 기론했다.

어떻게 보아 아다시노 히시리의 추리를 오히려 뒷받침하는 한마디었다.

"......그리, 되는군."

시든 나뭇가지처럼 칼라보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그 손가락이 붕대를 찔렀다. 피는 배지 않았다. 그 지배인 대행이 시행한 안구 적출 수술은 피험자에게 고통도 남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디까지나 노파심 때문일 뿐이리라.

"......아아."

울컥 솟아나 듯 노인이 신음했다.

"그래도...... 7년 전의 사건쯤은, 지금에야말로. 그래도 그 마안이 있으면 알았을지도 모르건만......."

칼라보의 목소리가 바닥을 기었다. 그렇게나 미워하고 꺼리던 마안이 지금에야말로 필요하다며.

너무나도 얄궂은 결과에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방관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나 끔찍한 결과에 목이 메고 목을 조르는 솜 같은 무력감에 우두커니 서있기나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