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타입문 백과

정보투고판


정보투고판입니다. 타입문 설정 관련으로 여기 빠진 게 있으면 투고해 주세요.
어디에서 뭐가 어떻게 나왔다...... 정도로도 만족합니다만 가능하면 번역, 원문 등을 지참하고 와 주시면 감사하겄슴다......
투고글을 올리면 2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페이커 소환과정

2019.06.29 21:02

마그누스 조회 수:5

"레일 체펠린과 아인나슈의 새끼── 이 둘을 같은 레이라인 위에 배치하면 필연적으로 일그러짐이 생기지. 예를 들어 종이를 생각하면 돼. 한 장의 종이 위에 두 개의 점을 찍고, 그 점끼리 붙이려 들면 어찌되는지."

상상해 보았다. 종이에 찍은 점들을 붙이려다가 쏙 밀려서 구겨진 모앙. 볼록 솟은 지점이 두 곳 생겨나고, 그 사이가 휘어서 같은 깊이의 오목한 지점이 나타난다.

흡사 잔.과. 같.이.

"그래, 생겨나는 건 잔이야. 실제로 중간 지점에 생긴 건 아니지만 강대한 두 개의 마력이 상극하는 지점에는 그만한 일그러짐이 생기지. 이 경우, 상극하는 마력은 동일한 질에 양이 같으면 같을수록 좋아, 예를 들어 상급 사도라고 불리는 존재가 남긴 산물끼리라면 안성맞춤이겠지.

물론 이것만으로는 잔이나 가마솥으로 성립해도 성배전쟁용으로는 성립되지 않아, 적절한 술식으로 세공하면 대마술에도 적응할 수 있지만 명색이 서번트를 부르기위한 아종성배로 가꾸어 내려면 한둘쯤은 세공이 더 필요해, 예를 들어 일그러짐의 형태를 유도하기 위해 소성배가 될 예장을 묻고 간다거나, 일본에 존재하는 대성배와 접속한다거나 말이야."

접속. 스승님은 그렇게 말했다.

시가를 든 손가락이 미끄러진다. 판데모리움 내부에서 시가의 붉은 불이 잔상의 선을 형성했다.

"레이라인 자체는 지구 각지를 돌고 멀리 극동까지도 이어지지. 아아. 혹시 당신은 그 주변의 땅을 사놓고 개발 한 건 아닌가? 레이라인을 갖추려고."

"으............!"

기억났다.

아인나슈의 새끼에서 탈출해 레일 체펠린에 합류할 때의 일이다. 주위의 토지가 묘하게 개발되어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딱히 새 건물이 만들어질 기척도 없었다. 그때는 의심스러워 할 여유도 없었지만 설마 그런 의미가 있었을 줄이야.

"레이라인을 갖추려고 현실의 땅에다 손을 쓰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든 수도를 세울 적에는 자연히 하던 행위야. 동양에선 지진제나 풍수 같은 형식으로 지금도 익숙하지. 고정된 선로가 없고 레이라인을 달리는 레일 체펠린에 그런 공작을 했다면 사전에 운행할 토지를 고정하는 것도 가능할 테지. 그 행선지에 아인나슈의 새끼를 준비해두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동시에 멀리 일본의 대성배와 접속하는 것도."

"굉장한 걸. 이게 엘멜로이 교실을 일약 시계탑의 명물로 올려놓은 안목인가요."

하트리스가 마음 속 깊이 감탄한 소리를 냈다.

빛의 결계 내부에서 남자는 왠지 유머러스하게 얼굴을 찌프렸다.

"제가 그 발상에 이를 때까지 꼬박 1년을 들였다고요. 자신감이 없어지겠어요."

"이런 건 단순한 답 맞추기야. 지긋지긋할만큼 힌트를 받은데다가 아무리 쌓아올린들 발견자나 발명자의 업적에 비길까."

 

 

 

 

 

 

"당신의 정체가 대체 뭘까 고민했었어. 서번트"

"헤파이스티온이라고 이름을 댔다만."

"클래스의 문제야."

성배전쟁에는 영령을 특정한 면모에 한정함으로써 소환을을 쉽게 만들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세이버(검의 영령)이라면 성검이나 마검을 가진 측면을 추출한 존재, 캐스터(술법의 영령)이라면 마술을 다루는 측면을 추출한 존재라는 것처럼. 이러한 클래스는 적대자에게는 밝힐 수 없는 진명 대신에 일시적인 가칭으로서 통용했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스승님은 진명을 밝혔는데 클래스를 밝히지 않는 이 영령을 줄곧 묘하게 여긴 것이다.

"지금이라면 그 의미를 알겠더군."

스승님은 품속에서 봉투 한 장을 꺼냈다.

현대 마술과의 방에서 금고에 놓여 있던 초대장이었다.

"금고에 초대장을 둬서까지 나를 레일 체펠린으로 불러낸 건 아종성배에 오인을 일으키고 싶었기 때문이겠지."

그 초대장을 가슴 높이에 든 채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틀림없이 아종 성배를 만든거야. 소망기로서는 기능하지 않아도 서번트를 불러내기에 충분한 수준의 성능도 확보했고, 거기에다 더욱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열차로 나를 불렀어. 10년 전의 제4차 성배전쟁에서 한 번은 마스터로서 승인된 나라면 성배 측도 오인하기 쉽지. 더해서 만에 하나라도 내 쪽이 마스터가되지 않도록 그렇게 영주도 위장했다."

스승님이 하트리스의 손에 새겨진── 지금은 그 중 1획을 잃은 영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해. 왜냐하면 진짜 성배전쟁에서 사용되는 클래스의 자리는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성배와 접속해 모종의 기능을 모방했다고 쳐도 대성배 자체를 해킹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같은 자리로 영령을 부를 수 없는 이상, 당신은 완전히 새로운 클래스를 추가(Extra)로 만들 수밖에 없어졌어."

엑스트라 클래스.

본래 성배전쟁에서 취급된다는 일곱 클래스, 그 외의 것.

"당신은 그것을 가.짜. 인.물.로 강행했던 것 아닌가?"

 

느닷없이 올가 마리가하던 말이 기억났다.

『──죄다 말이야. 이 열차 여행에서 접한 것은 죄다 잔상 같아.』

그 말에 얻어 맞은 스승님은 그것이 두 번째 조각이라고 말했다. 추리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톱니바퀴라고.

 

"성배도 가짜. 마스터도 가짜. 영주도 가짜. 보통이라면 이런 엉터리 술식은 통용되지 않아. 하지만 클래스 자체도 가짜를 상징하는 클래스였다면? 맞아, 요컨대 말장난 같은 셈이지. 속임수라고해도 되겠지. 하지만 원래 마술이란 말장난이나 속임수에서 태어난 법이야. 안 그러면 세계의 상징이라며 타로를 다루는 것조차 허용될 리 없겠지."

확실히 그건 속임수가 맞을 것이다.

모조리 다 가짜라면 가짜라는 사실 자체를 이용한 마술로 하면 그만이다. 스승님의 말은 그런 것이다. 근저부터 엉망진창인 논리인데, 마음에 착 와닿는 감각도 느끼고 있었다. 내 모든 신경이 스승님의 말이 옳다며 호소하고 있었다.

"즉...... 이 영령은......."

"그래, 페이커(가짜의 영령)이라거나. 그런 의미의 클래스일 거다."

"아무래도 작명에서 죽이 맞나본데요."

어쩌면 하트리스가 쓴웃음 지었다.

푸른 슈트의 가슴 주머니 주변을 누르고 스승님의 말을 긍정냈다.

"맞습니다. 새 클래스를, 저는 페이커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페이커.

가짜의 영령.

새로운 엑스트라 클래스.

"영령의, 가짜나 대역으로서의 일면을 부르기 위한 클래스로군. 당신은 그 사실을 숨겨 두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저 여자는 클래스를 입에 담지 않고 헤파이스티온이라고만 자칭했지. 보구의 진명을 해방하지 않은 것도 그게 이유일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