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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페이커 전투

2019.07.01 21:09

마그누스 조회 수:3

"그러니까 죽어."

여자가 열차 옥상을 박찬 것이다.

내 대각선 뒤에까지 나온 스승님에게로, 단 한 걸음, 놀랄만한ㅡㅡ 마력을 흡수한 나마저 넘어설 정도의 신체 능력으로 간격을 좁히고, 발검!

"스승님!"

이쪽도 대각선 뒤ㅡㅡ 스승님 방향으로 뛰면서 오른손을 휘둘렀다.

 

"이히히 히히! 이거 너무 뜻밖의 전개잖아!"

 

순간, 오른쪽 어깨의 고정구가 풀리고 애드가 펼쳐졌다. 루빅 큐브처럼 고속으로 회전과 분해를 반복하며 내 손아귀에서 그림 리퍼(사신의 낫)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완전히 변형한 낫이 아슬아슬하게 여자의 겸을 막았다.

"호오."

고운 입술이 뇌까렸다.

"대단하군 그래. 정면으로 받아냈나, 페르시아의 잡병보다는 낫나보군.

"당, 신은......!"

끼익끼익. 그림 리퍼가 비명을 지르고있다.

여자의 검은 명검이기야 해도 그 이상의 보구나 개념예장은 아닌 낌새다. 그러나 여자의 손으로 휘두르면 무기는 단순한 무기 이상의 뭔가로 변하는 것이다.

"기억해둬라. 전투 기술이 있다고 해서 전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사라 함은 육제와 의지와 영혼 전부의 문제다."

나는 열차의 옥상이라는 사실마저 잊을 지경이었다. 여자의 자세가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져있어서, 고대의 전장에 서있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마술사도 레일 체펠린도 남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비일상인데, 그럼에도 이 여자는 압도적일만치 까마득히 마성을 띄고 있었다.

'이건, 뭐야ㅡㅡ?!'

뇌리에 위험신호가 요란하게 맹땡거렸다.

건드려서는 안 된다. 다가가 선 안된다. 엮이면 안 된다. 그저 흥미를 드러내는 것조차 사선임을 알라. 그 그랜드의 마술사 아오자키 토코와 대치했을 때조차 소극적이던 경보가 온 힘을 다해 나를 떼어놓으려 하고있다.

그렇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여자가 쳐든 검이 한 번 더 그림 리퍼와 격돌했다.

'무거, 워......!'

무시무시할만큼 빠르고 날카롭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공격 하나하나가 기이할 정도의 무게를 담고있다. 막은 내 손이 저리며 뼈까지 울린다. 반드시 죽이겠노라고, 그런 강한 의지가 담긴 검이었다.

전사라고 그랬다.

단수히 전투 기술을 익힌 것이 아니라 육체와 의지와 영혼의 문제라고.

그렇다면, 그녀는......

"서번트다!"

답이, 등 뒤에서 들렸다.

내장을 바치는 것 같은, 사무치도록 절실한 감정이 담긴 외침이었다.

"그레이! 그 여자는 경계기록대(고스트 라이너)ㅡㅡ 인류사에 새겨진 영령의 구현화다!"

"하하. 충고가 좀 늦잖아, 네 스승."

여자가 웃었다. 웃는 채로 검을 옆으로 쓸며 달려갔다.

이번에야말로 주위 마력을 활짝 흡수하면서 세게 옥상을 박찼다. 열차의 희미한 진동과 맞추어 아주 살짝 무뎌진 검의 틈새를 누비고 후방으로 공중제비를 돌았 다.

착지할 때 여러 번 헛발을 디뎠다.

그런데도 여자의 검이 허벅지를 스친 것이었다.

"흥? 재미있는 재주를 부리는데, 방금 이쪽 마력을 빨아갔지?"

갑옷 입은 여자는 검을 슥 쳐다보고 즐겁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의 내가 보기엔 천적 같은 능력이지만 서글프게도 규모가 너무 작아. 아무리 고양이라도 쥐의 백분지 일 크기여야 의미가 없지. 흔해 빠진 망령 정도라면 지금 것만으로도 소멸하겠건만."

'망령'이란 말을 듣기만 했는데도 등골에 차가운 것이 내달렸다.

하지만 지금만은 눈앞의 상대에게 느끼는 공포가 앞섰다. 으득 어금니를 깨물어 식은땀을 참으며 무릎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실신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주 약간만 긴장을 풀어도 내장째 뒤집힐듯한 착각이 눈꺼풀에 어른거렸다.

실제로 그녀의 검이라면 내장은 커녕 나를 통째로 양단하는 것도 거뜬할 것이다.

"아아, 스승은 굼벵이라도 제자는 나쁘지 않군. 중압에 견디다 못해 목을 바치는 녀석도 있는데, 웬걸. 제법 버티잖아. 이렇게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품속에서 키우고 싶은데. 하긴 이것도 재미지."

여자가 입술을 뒤틀었다.

"포상으로 한 가지 좋은 걸 보여주마."

움직임은 없었다. 그저 그녀는 우리 쪽을 쳐다봤을뿐.

헤테로크로미아. 그 오른쪽 눈은 밤하늘의 암흑을, 그 왼쪽 눈은 푸른 하늘의 색을 품고 있음을 나는 비로소 의식했다. 의식함과 동시에 빨려들 것만 같은 파란 빛이 내 뇌리에 스며들었다.

쓸데없는 동작도 필요없는 1공정(싱글 액션).

그것만으로도 뺏뻣하게 몸이 옆으로 돌아갔다. 천천히 들어올린 그림 리퍼가, 내 모든 의지와 반해서 스승님을 겨눈 것에 멍하니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마... 안...?"

"너희는 강제의 노블 컬러라고 부르던가? 아 자리에 어울리는 결판이겠지."

푸르게 번진 눈이 즐겁게 웃고 있었다.

"나의 신께선 광기를 공경하시지. 도취와 명정이 부르는 희극도 비극도 몹시 즐기셔. 사제지간이 서로 죽이는 그림은 실로 어울린다고 보는데......  흠, 그쪽에는 쓸데없는 것이 달려있나보군. 지금 시대의 마술사는 준비성이 꽤 좋은 모양이야."

"......너."

안경을 누른 채로 스승님이 헛발을 디뎠다.

이 레일 체펠린에 대비한 예장이 가까스로 여자의 강제를 막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안도 할 수 있을 리 없다. 내 몸은 완전히 조종당하고 있다. 처음에는 뺏뻣하던 움직임이 서서히 길이 들며 스승님과의 간격을 좁혔다.

 

"야, 야야! 그레이! 진짜냐, 진짜야! 잠깐, 야!"

 

낫이 붕 휘둘러졌다.

열차 옥상에서 붉은 색이 밤의 어둠에 튀었다.

살갗 한 꺼풀, 스승님의 어깻 죽지만을 가르고 호를 그린 낫은 여자의 목덜미에서 정지했다.

"ㅡㅡ호오. 그 낫은 그런 재주도 부리나?"

검으로 낫을 막은 채로 여자는 우리 실상을 가볍게 간파했다.

그림 리퍼에서 방출된 마력이 반쯤 억지로 내 마술회로를 씻어내어 마안의 효과를 걷어낸 것이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조치였고 자유를 되찾는 게 찰나라도 늦었 으면 내 손으로 스승님의 목을 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너희끼리 알아서 결말을 낼 수 있을 만큼은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혀있길 바랐건만."

여자는 크게 뒤로 물러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검이 먹구름을 향해 쓱 올라갔다. 마치 천공을 가르겠다는 오만 그 자체인 모습이지만 결코 헛소리가 아니라 그 칼날에 심상찮은 마력이 차오르는 사실도 저절로 깨닫게 되었다.

장졸간에 옥상을 박찼다.

"그렇겐 못 해ㅡㅡ!"

"아니, 이미 늦었어."

절대적인 마력을 담고 검이 내리꽂혔다.

번쩍 환해지며 허공에서 뭔가가 출현했다.

나는 공간이 찢어졌음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보였을뿐이지, 실태는 영체의 실체화거나 또 다른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간에 갑자기 출현한 물체가 공기를 밀어내며 어마어마한 충격의 여파를 낳아 우리를 날려버린 것만은 사실이었다.

찌르르 살갗이 아팠다.

그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너무나도 방대한 마력을 흡수하다 못해 내 몸이 거절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이히히 히히히!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그레이 저건 아니지! 저것만은 아니라고! 아무리 나랑 너라도 저거 상대만은 너무 위험하다!"

애드가 외쳤다.

다시 벼락이 떨어졌다.

하나는 먹구름에서 길게 뻗친 번개가 몇 겹씩 갑옷 입은 여자 옆에서 격돌하며 축복한다.

그것은 번갯불을 두른 이두 전차였다. 현대 병기가 아니다. 고대에 말 등이 끌게 하며 전장을 달리던 유린의 상징이었다.

"ㅡㅡ뭣, 이?"

넋 나간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만도 하다. 전차를 끌고있는 건 새하얀 뼈였다. 골격뿐이지만 튼튼한 날개가 돋은 도마뱀. 아니 소형의 용인가. 앞다리가 없는 형태는 아마 훨씬 옛날에 멸종했을 터인 와이번이라고 불린 환상종을 떠오르게 했다.

그 골룡이 끄는 전차를 본 스승님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스승님?"

하지만 나라도 알 수 있었다.

이건 보구다. 애드의 내부에 비장된 신창과 같은 부류의, 인지를 초월한 무구. 더구나 극히 성질이 안 좋게도 나 또한 그 보구의 정체에 예상이 가고 말았다.

레일 체펠린 이야기를 했을 적, 라이네스가 말했었다.

 

ㅡㅡ『듣자니, 그의 보구는 두 개 있었다는데 말이야.』

ㅡㅡ『하나는 그 고르디온의 신전에 봉납되었다는 전차 신위의 차륜(고르디아스 휠).』

 

"내 이름은 헤파이스티온!"

용맹하게 여자가 부르짖었다.

"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왕 이스칸다르 첫째 심복이노라!"

여자ㅡㅡ 헤파이스티온이 뛰어올라 고삐를 잡자마자 전차가 아무것도 없는 공중을 달렸다.

신화 같은 용맹한 자태는 크게 반원을 그리며 우리 쪽으로 돌격해왔다. 전자를 끄는 골룡의 한 발짝마다 번개가 작렬한다. 조금 전의 낙뢰에 필적하는 위력이 그때마다 솟구친다. 인간 따위가 맞으면 틀림없이 즉사할 번갯불의 불티.

"스승님!"

그 몸에 안겨들어 마구잡이로 도약했다.

둘이서 열차 옥상을 구르니 처절한 에너지 덩어리가 등을 지나갔다. 번개 바람이 세상을 유린한다. 등 뒤를 지나친 전차는 파괴 그 자체의 화신이 되어 숲의 수목을 무슨 연필처럼 쓰러뜨렸다.

'멈추지 않아ㅡㅡ!'

이런 것을 막을 턱이 없다.

만약 수단이 있다면 단 하나 뿐.

다시 한번 전차가 빙글 돌아 반원을 그리는 모습을 바라며 무릎으로 선 나는 애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림 리퍼에서 수많은 안구가 열린다. 주위 마력이라면 충분, 좌우지 간 회로를 돌려라. 본래의 기구(시스템)로 전락해야 할 순간은 지금.

"Gray...... Rave...... Crave...... Deprave......"

"안 돼, 그레이!"

스승님이, 저항했다.

"이렇게 불안정한 자리에서 쓰면 우리도 그냥 못 끝난다. 애시당초 저래뵈도 상대는 진명 해방조차 하지 않았어."

"하지만!"

더더욱 속도를 높이며 전차가 짓쳐든다.

이미ㅡㅡ 아니, 이래선 애초에 해방이 제때 맞추지 못한다.

천천히 스승님이 일어섰다. 늘 시가 끝부분을 자르던 나이프를 꺼내고 있었다. 설마 그런 날붙이로 영령에게 맞서자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굳어버린 채로 눈을 부릅떴다.

"하하하, 자살할 셈이냐!"

"......설마."

걷기 시작한 스승님의 손에서 지극히 작은 칼날이 번뜩였다.

여윈 몸이 전자와 번개에 삼켜졌다. 밤낮마저 역전시킬 눈부신 번갯불. 그리고 낙뢰마저 누를 정도의, 사납고 야만스러운 포효.

"AAAΑLaLaLaLaLaie!"

운명은 판가름났다.

공중을 수평으로 달리는 번개 서린 질주는 절대적. 골룡에 짓밟히고 바퀴에 박살이 난 육체는 원형마저 남기지 못하리라. 그 위력은 이미 대인보구가 아니라 대군보구의 경시에 있다. 설혹 현대병기로 무장한 군대일지라도 한 번 유린당하면 괴멸은 면하지 못한다.

 

 

(이 후로는 카울레스의 도움으로 열차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

 

 

"......우리도, 덕분에 살았어."

스승님이 가느다랗게 숨을 돌렸다.

그 발밑에 작은 도기 항아리가 굴렀다. 처음부터 금이 가있었던 모양이라 살짝 구르니 거미집 모양으로 균열이 가다가 투두둑 부스러졌다.

"......원시전지용의 제어 술식이지만...... 직격이 아니라면......버텨줬나."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가 카울레스가 눈을 깜빡였다.

"머리, 자르셨어요?"

불과 한 움큼이지만 스승님의 머리가 잘려나간 것이다.

조금 전의 나이프는 적에게 쓴 것이 아니라 그 머리를 자르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나도 알아차렸다.

"......원래는 여성 마술사가 곧장 쓰는 히든카드지만. 머리카락은 마력을 담기에도 의식의 촉매로 쓰기에도 편하지. ......흥, 하여튼 재능이 없는 신세 아니냐. 예장을 주렁주렁 달아봤자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비장의 수 한두 개 정도는 준비해두고 싶었어."

혹시.

머리를 기르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원시전지용의 마술을 증폭시켜 피뢰침처럼 위력을 빼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력을 삭감해본들 그 전차와의 차이는 절대적. 격돌 이전에 풍압만으로도 나와 스승님은 날아간 것이리라.

그런데도 살아남은 건, 여전히 기적과도 같은 확률이었을 것이다. 골룡의 발길질 하나라도 맞았으면 스승님이나 나나 목숨이 없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