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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의 인생, 로어와 나르바렉

2021.09.04 18:25

제보 조회 수:18

가장 처음의 감정은 오히려 연민이었다.

분노도 실망도 아니다.

그저,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물론, 가장 가련한 것은 이 몸이긴 했지만)

15세기의 끝자락에 그는 태어났다.

축복받은 집에서 태어나, 고급의 교육을 받고, 심신 모두 건강하게 성장했다.

선행을 이해하고, 악덕을 인정하지 않고, 일절 죄에 관여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를 신동이라고 우러러보고, 자신들의 토지가 한층 더 발전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농장을 이어받기를 바라는 양친의 희망을 거절하고, 신의 집의 문을 목표로 했다.

교회의 타락....... 권력자들에 의한 현세 이익 추구....... 가 곧 뿌리로 되돌아와, 과실이 떨어지기 직전이었을 무렵의 얘기다.

양친은 아쉬워했지만, 그가 바라는 것이라면 하고 기꺼이 보내줬다.

어쩌면, 그라면 이 나라에 만연한 부패한 냄새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 않을까 하고.

물론.

아무 뒷배도 없는 어떤 명문가의 아들에게, 세계를 바꾸는 일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지만.

그는 수많은 도시를 거쳐 가며, 수많은 사람들과 알게 되고, 수많은 일의 경과를 목도하며, 어떻든 간에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은. 훌.륭.하.다.

주가 지상에 씨를 뿌린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생명이다.

이, 약하고, 위태롭고, 시끄럽고[성가시고], 구제할 길 없는 동물의 유일하면서 최대의 장점.

“의미를 추구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인간의 성질에서, 주의 의도를 파악한 것이다.

그는 매일 같이 사람들과 사귀었다.

도시에 거주하는 자. 도시에 찾아온 자. 어느 쪽이라도 괜찮다.

본 적 없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인생을 아는 일이 그의 기쁨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에는, 반드시 한 가지의 진실이 있다.”

하찮은 것,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에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수많은 인간을 알려고 힘썼다.

학우들은 “10명이면 충분하다”고 그를 비웃었다.

교사들은 “100명에서 그만두도록 해라”고 그를 나무랐다.

사제들은 “만인을 알도록 해라”고 큰소리쳤다.

유일하게, 친우만이 “지옥의 시작이다”라고 그 앞을 예견했다.

친우가 말한 대로, 1000명분의 인생을 신중히 기록했을 때, 그는 벽에 부딪혔다.

재미도 없는, 어떤 보상도 없는 행위에 마음이 꺾였던 건 아니다.

그 반대다.

그는 사람을 좀 더 알고 싶었다. 1000이나 2000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좀 더 많은 진실을 모으고 싶었다.

하지만 부족하다.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가령 60년간 살아가면서 매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이 도시의 인간조차 총망라할 수 없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인간은 늘어나길 계속한다. 세계는 넓어지길 계속한다. 가능성은 생겨나길 계속한다.

아아 --- 너무나도, 너무나도 인간에게는 시간이 없다!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처음부터 개인으로서의 행복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는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건 주위 사람들의 착각이다.

그는 지극히 평균적인 능력의 인간이었다.

인간의 능력을 단순하게 수치화했을 경우, 그 합계치는 가까운 이웃과 아무 차이도 없었을 테지.

단지, 그 수치가 한 방향으로 치우쳐 있었을 뿐이다.

그는 인간의 줄거리보다, 세계의 줄거리에밖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군상에 흥미를 가지는 대신에, 개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었다.

자신을 드높이는 향상심 대신에, 권력욕이 결여되어 있었다.

미래에 대한 꿈 대신에, 현재를 돌이켜보는 정(情)이 결여되어 있었다.

요컨대, 너무나도 비인간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누구보다도 선량했다.

인간의 가치를 사랑하고, 선한 사람들의 생활을 사랑하며, 누구보다도 신앙에 열심이었다.

확실히 그로서는 종교세계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하나의 요인이 되었을 터다.

“인간”을 사랑하면서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신동이라도, 그. 때.가 올 때까지, 그는 틀림없는 성자였으니까.

--- 그건, 그가 타인[사람]의 인생을 배우기 전.

  아직 어린, 아이였을 때의 이야기.

그는 정신이 성숙해있었기 때문에, 동심을 갖고 있긴 하더라도, 거기에 있는 불가사의를 “손이 닿지 않는 것”이라고 처리해버릴 수 없었다.

사회의 요지를 이해하고 있던 소년에게 불가사의는 없었다.

비도 구름도 유령도 모두 해명할 수 있는 일이다. 

소년에게 있어 불가사의는, 그 시대에는 해명할 수 없는 것.

누구든지 “그저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 받아넘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최후의 동심.

같은 연령의 소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반짝이는 별이었다.

그러니까 ---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하룻밤 동안의 여행을 나섰던 그 시간을.

  높이 높이,

  어떤 버팀목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 돌의 불가사의함을.

하늘에서 반짝이는 하얀 원반과, 그 원반을 희미해지게 하는 구름.

저건 무엇일까.

어떠한 의도로, 어떠한 짜임새로 존재하는 것일까.

손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한 기대, 흥미, 공포.

그것들 전부가, 그의 마음에 반짝이는 별로써 새겨졌다.

일의 시작이자 원동력.

너무나도 죄 깊고, 너무나도 어리석다.

그는 이 때, 우주의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밝혀내고 싶다고, 천상의 주에게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윽고 그는 알게 된다.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던 “요지”는, 앞선 사람들에 의해 해답에 다다라 있었다는 것을.

신의 집은 탄압의 이름 아래 온갖 지식을 저장하고 있었다.

수학. 천문. 지층. 역사. 건축. 경제. 의술. 농경. 그리고, 훗날 과학이 되는 연금술.

이 시대의 신의 집이야말로, 온갖 첨단지식이 모여 사장되어 가는 세계 최고의 학부이면서 지(知)의 묘지였다.

원숭이는 도구를 얻었다.

사람은 문명을 얻었다.

학자는 별을 읽고, 관측수단을 고안하여, 하늘을 나는 수단에 도달하기 전에, 우주의 넓음을 추측하는 지혜를 얻어냈다.

그 밤에 올려다봤던 『돌』은 무엇인가.

이 대지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조차, 이미 답은 도출되어 있었다.

만사가 이런 사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온갖 불가사의는, 이미 그 개요가 해명되어 있었다.

이름도 없는 현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이후의 천년은, 이것들의 증명을 할 뿐인 시대일 것이다.”

해명되어 가는 세계.

의미가 붙어져 가는 우주.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알았을 때, 그를 지배했던 것은 환희가 아니다.

공포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였다.

“포기하고 있었기에 용서했던 것이다.”

“그런데 뭐냐. 이건 뭐냐. 이 결론은 뭐냔 말이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언젠가 모든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온다.”

“그렇다고 하는데도 --- 이. 몸.에.는., 너.무.나.도. 시.간.이. 없.다.”

세계의 넓음과 비교해서 인간[나]의 생은 너무나도 협소하다.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 살아왔었는데, 무엇도 알지 못한 채 썩어 문드러지는 원통함.

그는 인간의 의미를 추구하면서도, 인생에 의미 따위는 없다고 알게 되어버렸다.

그것이 얼마나 참혹한 결론인지, 인간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터다.

그는 이 때, 처음으로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이 무섭다. 무위(無為)가 무섭다. 끝이 없는 세계가 무섭다. 이정도로 지식을 얻었는데도, 나는 아직 무엇 하나 알고 있지 않다.

두려운 것은 스스로의 소멸이 아니다.

스스로의 목적[의미]가 산산조각 나는 것이, 이렇게나 두려운 거다.

사고방식을 교체할 필요가 있었다.

지상에는 아직 “영원”은 없고.

늘어나길 계속하고, 변화하길 계속한다면 “완성”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그는 단계를 벗어났다.

하늘에 걸려 있던 사다리에서 등을 돌렸다.

보고 싶었던 것, 추구했던 것은 단순한 것.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는 무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짓궂은 얘기지만.

무한이 퍼져가는 인간을 공포스러워 했던 남자가, 그 해결책으로, 무한의 시간을 추구했던 것이다.

 

『....... 흐응. 뭐, 이쯤에서 발을 빼는 것도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고. 예의 개혁은 어찌 됐든, 인쇄기술[구텐베르크]의 일반화가 치명적이니까 말이야. 당분간 험악해지겠지, 교회[우리]도 협회도.

 무엇보다 마술협회[저쪽] 쪽은 보다 큰 타격일 테지만. 대량 인쇄로 인해 온갖 미신이 구축된다. 신비의 뼈대가 요란하게 삐걱댈 테니까 말이야.

 아아, 그래서 지금인 건가. 어느 쪽도 정원 청소로 여력이 없지. 정신 나간 신동이 진조들의 성으로 향한다고 해도 곧바로 추격자는 파견할 수 없어. 실로 불난 틈에 도둑질이다. 이 틈에 가장 가까이 있는 영원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거구나, 그대는』

『설마요. 흡혈귀는 그저 늙기 어렵고, 죽기 어려울 뿐인 종이라구요. 영원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죠. 그들은 어디까지나 공정 중 하나에 불과해요. 우선은 간결하게 자살해서,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할 뿐입니다』

『그것 참. 영원을 추구하는 남자가 생을 재촉하다니 짓궂은 이야기로군.

 그래서, 내일이라도 교회[우리 쪽]를 뜨는 건가』

『매장기관에 관해서는 당신께 일임하겠습니다.

 주교의 자리는 바라지 않아요.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유산은 전부 써버렸기도 하구요. 적기였던 겁니다, 지금이』

『한쪽은 시골 호족의 아들, 한쪽은 성흔[스티그마]이 있을 뿐인 여자. 주교로 올라갈 수 없는 자끼리, 위로해주고 있던 것도 끝이다. 뭐 아무 상관없지만 말이야.

 그래서, 그대는 자신의 마술이론을 완성시킨다는 건가. 나는 여기서 벗어날 생각이 없으니까, 그대에게 맞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겠군. 뭐, 다행히 나는 여자다. 얼른 아이를 낳아 그대에 대해 전해주도록 하지』

『호오. 뭐라고 전할 겁니까,

 나르바렉』

『글쎄다. 앞으로 100년 정도 지나면 신참 사도가 대두해온다. 그녀석의 상대를 해도 헛수고니까 무시하도록 해라, 라고 구전하도록 하지』

『아뇨, 100년이나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살아있을 적에 이단 심문의 대상이 될 테죠. 이 몸은 가장 뛰어난 흡혈종이 될 테니까, 10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하, 바보 같은 소리를. 사자(死者)에서 다시 시작하는 거다. 그대가 10년에 한 명 꼴인 천재라고 해도 100년은 걸려. 녀석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지옥이다. 가열참이 우리들과 비교할 게 못된다고』

『정통적인 방법이라면 그럴 테죠.

 하지만 처음부터 최고위의 흡혈종이 된다면, 그들의 세계의 법칙도 통용되지 않죠』

『....... 모르겠군. 무슨 소리냐, 그건』

『뭐, 간단한 얘기라구요.

 사도의 능력은, 그 피를 빤 진조의 영향을 받는다는 건 알고 계실 테죠.

 그러니까 ---』

『--- 최고의 사도를 목표로 한다면.

   최고의 진조에게, 스스로의 피를 빨리면 되는 겁니다』